해가 완전히 내려앉은 뒤에 찾은 빛마루는 낮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변은 이미 어둠 속으로 잠겨 있는데, 폐교였던 건물 안쪽으로만 조명이 조용히 켜져 있어 마치 시간이 따로 흐르는 공간처럼 보였다. 멀리서부터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길을 안내하듯 이어지고, 그 불빛을 따라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소음은 자연스럽게 끊어진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교실 특유의 넓고 낮은 울림이 먼저 느껴지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이들 대신 커피 향과 나지막한 음악이다. 낮보다 사람의 기척이 훨씬 적은 밤의 빛마루는 더 조용하고, 더 깊다. 창밖은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유리창에 비친 실내의 불빛과 사람의 움직임이 오히려 하나의 풍경처럼 겹쳐진다.
낡은 운동장 옆에 현대적인 색의 조명이 비쳐서 묘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학교였던 공간에 요즘 감성의 색들이 덧입혀진 모습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이순신 동상은 그대로인데, 그 주변의 분위기만 completely 달라진 느낌이었다.
어색한 조합인데도 이상하게 잘 어울리고, 눈에 오래 남았다. 과거와 지금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는 밤이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놓인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남강과 유등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테이블이라 은은한 조명이 불빛처럼 반사돼서 공간 전체가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다. 폐교 특유의 직선적인 구조 안에 곡선과 빛이 더해지니 묘하게 잘 어울린다. 일반 테이블보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모이고, 사진 찍기에도 포인트가 된다. 오래된 학교 공간 안에 진주다운 테마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느낌이다.
카페 내부 한쪽에는 일출과 일몰을 표현한 디지털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시간에 따라 색과 밝기가 바뀌면서 해가 떠오르고 지는 장면이 은은하게 반복된다. 강한 화면이 아니라 공간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빛이 흐른다. 폐교라는 장소에 디지털 요소가 들어가 조금은 낯설지만, 의외로 공간과 잘 어울린다. 낮과 밤, 시간의 흐름을 이 작은 조형물 하나로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빛마루는 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카페라기보다, 계절을 느끼기 위해 머무는 공간에 가깝다. 가을에는 낙엽 소리와 함께, 겨울에는 김이 오르는 커피 잔과 함께 시간이 흘러간다. 도시의 카페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계절의 속도’가 이 폐교 안에서는 유난히 또렷하게 전해진다.
이번 여행에서 빛마루는 ‘어디를 방문했다’기보다, ‘어느 계절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는 기억으로 남는다. 가을과 겨울 사이,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 이곳은 가장 따뜻한 선택이 되어준다.
• 위치: 경남 진주시 대곡면 집현면 오방로 6 (구 단목초등학교)
• 형태: 폐교 리모델링 감성 카페
• 추천 방문 시기: 가을 단풍철, 겨울 초입 노을 시간대
• 특징: 넓은 교실형 좌석, 복도 동선, 한적한 시골 풍경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